김정욱2010. 4. 9. 23:36

오전 내내 바람 한점 없는 풍경 속에 갇혀 반쯤 표류 했다. 바람이 없는 날은 아주 느리게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다소 절박해 보이기는 하나, 햇살이 따뜻해 (봄이라) 소풍 나온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여정은 통째로 소풍이지만.
오후 또한 내내 표류할 것 처럼 바다는 잔잔했다. 어디에서 온지, 또 어디로 가는지 모른들 어떠리~ 삶은 소풍인가?

"사람들은 말야, 이런 풍경 하루를 위해 일년을 열심히 일 하기도 하잖아, 근데 참 신기해, 이런 풍경 속에 있으면서도, 이 풍경이 지루하게만 느껴지니까 말야. 바람이나 좀 불어 줬으면 좋겠구만, 항상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신기하지, 불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어떤 막연한 무언가를 동경한다는거, 그래야 상대방의 인생도 아름답게 보이고,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게 만드니까, 실제로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고 보면 내가 언제부터 바다에 나왔더라?"

신기하게도 완전한 자유 속에서는 구속을 꿈끈다. 이것은 마치 집착이 심한 여자친구를 사귀다 집착에 못이겨 헤어지고 나서, 쿨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고나서 자신이 꿈꾸던 쿨함이 무심하게 느껴지는 그런 상태와 비슷한 것 같다. 적당한 집착과 적당한 무관심, 이 두가지만 잘 지켜줘도 연애는 오래 지속 될 수 있었을텐데,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과 같이. 자유 속에서 안정보다는 방황하고 있다니! 왠지 자유가 싱겁고, 이제는 무엇을 추구해야 될지 모르겠는 기분이다. 이럴때는 좀 더 감동적이지 않은 자연이 얄밉다.

오늘 안에 입항이나 할 수 있을까. 한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조금씩 바람이 불어왔다. 자연은 예쁘지만 변덕이 심한 여자친구와도 같다. 이 바람은 분명히 우리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 주는 자연이다. 무심과 무시로 이루어 진 관계가 아닌,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금새 자연에게 사과를 했다. 순풍에 항해 한다는 것의 즐거움은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봄날의 들판을 걷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4월 9일 오후 4시 17분, 3일간의 항해를 마친 뒤 입항을 앞두고, 제부도 등대앞 (위도 37°11'0.37"N 경도 126°37'8.01"E )


순풍에 항해는 연애랑 비슷한 기분 아닌가?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봄날의 들판을 걸은 적이 있었던가?
내게 여자친구가 있었던가?

한숨을 몰아쉬는데, 이번엔 또 바람이 죽어 버렸다.
내가 자연을 달래 주어야 될 차례인 것 같다.





Posted by 김울프